나는 호주로 오기 전까지 ‘중국인’이라고하면 무조건 조선족을 먼저 떠올리는 흔한 한국인이었다. (한국에는 조선족이 70만명에 달하기에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중국국적자를 본 적이 있다면 대다수가 조선족이라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봤을지언정, 소위 ‘본토’ 중국인이나 화교와 깊이 접촉한 한국 사람들은 매우 적다.
喺嚟澳洲之前,一講起「中國人」,我就會自然咁諗起「朝鮮族」。(喺韓國大概有七十萬朝鮮族嘅人,可能就係因為咁啦。)如果喺韓國你見到中國國籍嘅人,大多數係朝鮮族。所以對於韓國人嚟講,聽過朝鮮族嘅事係好普遍嘅,但係深入接觸過真正所謂「大陸人」或者華人嘅人,其實少之又少。
하지만 해외로 나오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이곳 호주에서 자의든 타의든 가장 많이 마주치고 부대낄 수밖에 없는 외국인은 단연 해외 화교 내지는 중국인이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호주 한인 인구는 너무 적다. 워킹홀리데이 인구를 제외하면 영주하는 한인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특정 동네에만 몰려있는 느낌이다.
不過,一去到海外,情況就一百八十度改變咗。喺澳洲呢度,無論係自願定係被迫,我最常遇到,最容易接觸到,同我「擦身而過」嘅外國人,毫無疑問就係海外華人或者中國人。另外,住喺澳洲嘅韓國人比我想像中少好多。如果唔計做緊working holiday嗰啲,真正住喺澳洲嘅韓國人真係屈指可數,基本上得某幾個區先多啲。
낯선 타국 땅, 인종과 문화가 전혀 다른 사람들과 저쪽의 모어도 내 쪽의 모어도 아닌 영어로만 소통하며 지내다 보니, 동양인에 대한 그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내가 유난히 사회성이 부족해서 인종이 다른 외국인과 친하게 지내기 어려워해 하는 탓일 수도 있지만, 인종이 비슷한 사람과의 교류가 절실했다.
喺一個完全陌生嘅國家,同一啲同我種族文化差天共地嘅人,日日淨係靠啲生硬嘅英文溝通,過咗一段時間之後,真係會掛住亞洲人嗰種外貌帶嚟嘅親切感。可能係因為我本身社交能力比較弱,唔太識同唔同種族嘅外國人混熟,所以覺得好需要同外貌相似嘅人交流。
결국 나는 생존과 외로움 해소를 위해 ‘그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조금씩 광동어든 중국어든 공부하며 나이 어린 중국인 동기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이 먹고 외국어 공부하는 것이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 엄청난 희생이다.)
最終我決定,為咗生存同減輕孤獨,必須要學識點樣接近「佢哋」。我發覺自己原來無論係慢慢開始學廣東話又好,普通話又好,都係為咗想同啲後生嘅中國同學相處得好啲而努力。(真係冇諗過,呢個年紀再學外語會咁辛苦,簡直係一種好大嘅犧牲。)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가진 ‘중국인 이미지’가 얼마나 단편적이고 단순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베푸는 호탕하고 친근한 관계 속에서 마음을 열다가도, 때로는 씁쓸한 상처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 법’에 대한 교훈을 비싼 값을 내며 학습하고 있다.
喺呢個過程入面,我先發現原來自己對「中國人」嘅印象幾咁片面、幾咁單一。喺佢哋大方又親切嘅相處方式入面,我會慢慢打開心扉,但係有時又會因為啲苦澀嘅傷害,為咗學識點樣同人相處而付出沉重嘅代價。
중국인들 또는 중화권이 한국인, 일본인보다 호탕하고 친근하다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내가 처음 만난 중국인 동기들 중 일부는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처럼 친절하게 다가왔다.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기엔 막상 생각이 안난다…)
好多人都有呢種印象,中國人或者成個華人圈比韓國人、日本人更豪爽、更親切。其實我第一次認識嘅中國同學入面,都有啲熱情到好似乜都肯為你付出咁主動接近我。(要提出具體例子,反而突然之間諗唔起…)
사람을 쉽게 믿는 내 성격상, 처음엔 경계하다가도 이런 적극적인 친근함 앞에서는 마음의 가드가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타국에서 만난 동양인에게서 받은 따뜻한 정에 감사하는 ‘예쁜 마음씨’를 가진 나는 받은 만큼 베풀어야 된다 생각하였다… 내 쪽에서 정을 주고 싶지 않아도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나오면 결국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以我咁容易信人嘅性格,雖然一開始會有戒心,但面對住呢種主動又親切嘅態度,心裏面嘅防線都自然會慢慢放低。喺異地遇到東亞人俾我嗰份善意,我一直覺得自己係識得感恩、心腸唔差嘅人,所以成日都覺得應該報答番人哋。就算我唔想付出感情,但係如果對方做到呢個地步,我會心軟。
내가 그들을 ‘지인’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언제 봤냐는 식으로 행동을 바꾼다. 더 이득이 되는 그룹이 생기자 내 주변에는 사라지는 양태를 보인다. 친근하고 호탕하게 대하다가 내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이미 내 지인이 아니다. 물론 그들의 입장은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면 적어도 한국인인 나에게 있어 상황에 따른 ‘전략적 접근’으로 아니 느껴질래야 아니 느껴지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當我開始將佢哋當做「自己人」,以為可以開始放鬆咁相處嘅時候,佢哋往往又會突然變到好似「唔識我咁」嘅態度。一旦佢哋揾到對自己更有利嘅圈子,就會喺我身邊消失。啱啱開始仲對我好親切、好豪爽,但當我打開心扉嘅時候,佢哋已經唔再當我係自己人。當然我唔知佢哋嘅睇法係點,但係事後回望,對於身為韓國人嘅我嚟講,好難唔令人覺得係一種審時度勢嘅策略式接近。
앞서 이야기했던 간이고 쓸개고 빼줄 듯 친근했던 전략같이 느껴지는 태도가 나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기 위한 디딤돌로 내가 사용?된 것 같을 때 상처를 받았지만, 그들의 행동 양태 중 분명히 내가 인정하고 감탄한 부분이 있다.
之前提過嗰種好似「乜都肯為你付出」咁嘅親切,但又帶住少少策略嘅態度,有時令我覺得自己好似只係佢哋建立關係嘅踏腳石,嗰種俾人當作一個踏腳石嘅感覺,諗番轉頭都覺得心底有啲刺痛。喺佢哋嘅行為模式入面,其實都有啲地方係我認同同佩服嘅。
한국인인 나는 열심히 최대한 어떻게든 해보자할 때 중국인 동기들은 철저히 시간 대비 효율을 따지거나 AI를 생각지도 못한 스마트한 방식으로 활용하거나 모든 학습 내용을 자국어로 먼저 번역해서 쭉 훑고 개념을 잡은 뒤에 원어로 본다던가 문장 문장 AI를 사용해 꼼꼼이 체크한다던가 매우 치밀함이 돋보였다.
我身為韓國人,成日都係抱住「盡力去做,點都要搞掂」嘅心態去學嘢。反而啲中國同學就好唔同,佢哋會將時間同效益計得好清楚,好純熟咁用AI,又會將所有內容先翻譯為自己嘅母語速讀一次,之後再睇返原文,甚至逐句用AI再核對,做嘢方式真係好細心、好有系統。
이러한 전략적 면모는 때로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중화권 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용적 지혜’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러한 그들의 전략은 ①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②목표를 명확히 겨냥하고 ③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서구적 합리성과 ④결과를 중시하는 동양적인 실용주의가 결합된 모습이라고나 할까…
呢種帶住策略嘅一面,有時會令我覺得有啲冷冰冰,但我都明,呢個可能係佢哋喺中華文化圈入面,為咗喺競爭社會生存落去而累積返嚟嘅實際性智慧。佢哋呢種策略,似乎係一種①唔會俾情緒牽住走,②可以準確瞄準目標,③又混合咗西方講求理性同效率嘅思維,④再加埋東亞文化裏面嗰種重視結果、講求實用嘅務實性,形成咗一套獨特嘅行事方式…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는데… 때때로 너무 전략적인 나머지, 그 전략적인 면모가 전혀 안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순수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자신의 속내가 안보일 것 같다고 착각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이 순수함이 귀여워 날 웃게 만든다.
但係講到呢度,其實並唔係咁簡單…有時佢哋啲策略,反而流露出一種天真,好似真係相信自己嘅招數冇人睇穿咁。好似一個以為自己詭計冇人知嘅小朋友咁。呢份天真,有時有幾得意,會令我忍唔住笑。
파블로프의 개처럼 인간은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동물이고, 이 남반구에서 살기 위한 알고 있어야 할 생존 방식 하나 정도를 학습한 느낌이다.
好似巴甫洛夫嘅狗咁,人類本身就係靠經驗去學習嘅動物,而我喺南半球生活咗一段時間之後,都覺得自己好似學識咗一套喺呢度必須知道嘅生存方式。
나는 친근함을 마치 파블로프의 종소리와 같은 조건 자극처럼 들었고 나도 모르게 침 흘리는 반응과 같이 마음을 열고 정을 주는 것을 침 흘리는 반응과 같은 조건 반응을 보인 것 같다.
我面對人哋親切嘅態度,就受到好似聽到巴甫洛夫嗰鐘聲咁嘅「條件刺激」,而我自己又會不自覺咁打開心扉,付出感情,好似實驗入面嘅狗咁「流口水」,個反應就好似「條件反應」咁。
호탕함과 친절함에 무턱대고 감사할 필요는 이제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학습 과정을 냉소적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나름 30대의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복잡한 다인종 사회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는 동시에 실용적 관계 맺기를 터득하고 싶다.
而家我覺得,其實冇必要對人哋嘅大方同熱情無條件咁感謝人哋。可能喺有啲人眼中,我咁樣嘅學習過程會顯得有啲冷嘲熱諷,不過我寧願將佢當成三十歲之後嘅另一種成長。我喺呢個複雜、多種族社會入面,想學識點樣一方面唔俾情緒牽住走,保護/防禦自己,另一方面又可以建立到實用嘅人際關係。
아직 배우고 알아갈 것이 많다. 다음 학습은 또 어떤 깨달음을 가져다줄지 오늘도 가드를 올린 채 다음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我仲有好多嘢要學。下一課會帶俾我乜嘢覺悟,我都唔知。今日都提高戒心,等下一次鐘聲再響!